제 목 | 야구 심판 수신호 만들고 보급한 윌리엄 호이, 농인이기에 가능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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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3-11-28 14:27 |
조회 | 679회 | 댓글 | 0건 |
유튜브 링크 | https://youtu.be/tJ1swt2k-ug?si=i4xKlvigPjSblXh- | ||
2023.03.22.
안녕하세요? 한국농아방송 임영수 앵커입니다.
혹시 야구, 좋아하세요? TV로 야구 경기를 보다가 문득 야구 심판은 어떻게 농인이 쉽게 이해할 만한 수신호(手信號)를 사용하게 됐을까? 라는 궁금증이 생긴 적이 없으신가요?
야구 심판의 수신호는 한 ‘평범한’ 야구 선수에 의해 탄생했다고 합니다. 바로 ‘중견수의 왕’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윌리엄 엘스워스 호이’(William Ellsworth Hoy, 1862~1961)입니다.
윌리엄 호이의 놀랍고도 감동적인 스토리는 지난 201.8년 두레아이들에서 펴낸 『야구의 역사를 바꾼 영웅 윌리엄 호이』(낸시 처닌)라는 책에 모두 담겨 있는데요.
1862년 미국 오하이오주에서 태어난 그는 3살 때 수막염을 앓고 청각 기능을 상실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구를 좋아해 날마다 연습에 매진하며 오하이오 청각장애인주립학교를 1등으로 졸업했습니다.
학교 졸업 후 구두수선공으로 일하면서도 야구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요. 마침내 26살인 1.888년 꿈꾸었던 무대인 메이저리그에 서게 됩니다. 1902년까지 14년 동안 통산 타율 2할 8푼 8리, 도루 607개, 안타 2,044개, 1,795경기 출전, 홈런 40개 등 뛰어난 기록을 남기며 메이저리그 역사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농인 야구선수가 되었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야구 심판의 판정 수신호를 만들고 정착시켜 야구 역사를 바꿔 오늘에 이르게 했는데요.
다른 선수들보다 연봉을 적게 제시받기도 했고, 팀 동료들이 등 뒤에서 수군대기도 했으며, 시합 중에 심판의 판정 소리를 듣지 못해 자신이 아웃되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타석에 있다가 놀림을 받기도 한, 농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했던 고난을 통해 이루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자신에게 수신호로 모든 것을 말해주던 어머니의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스트라이크일 때 오른팔 들기, 볼일 때 왼팔 들기 등 농인인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와 관중까지도 쉽게 판정을 알아볼 수 있는 수신호를 만든 것입니다. 추후 심판들과 더 연구하였고 마침내 판정 수신호를 야구 경기에 정착시켰는데요. 관중들은 수신호 덕분에 멀리서도 야구를 훨씬 편하게 관람할 수 있어 열광했다고 합니다.
그는 업적을 인정받아 첫 번째로 미국체육협회 청각장애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핸콕 스포츠 명예의 전당, 오하이오 야구 명예의 전당, 신시내티 레즈 명예의 전당 등에 헌액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스포츠에도 배리어 프리(barrier free) 운동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들과 함께 운동하는 등 스포츠 문화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운동장, 용품, 규칙 등 스포츠 활동에 지장이 되는 장애물을 개선해 함께 스포츠를 즐기고 건강을 지키자는 것인데요. 경기 방식뿐만 아니라 역사까지도 새로 쓰게 한 야구 수신호의 정착은 최초의 배리어 프리 운동이 아니었을까요?
수어뉴스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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